함민복 시인은 ‘세월2’ 라는 시에서 ‘마음다치지 말게, 질긴 꽃잎은 없다네’ 라고 노래했다. 그는 세월 앞에서 고개를 수그리고 자연이 다칠세라 미안해한다. 강화도에서 10년 동안 홀로 살아온 그가 바다와 갯벌과 망둥이의 언어로 두 번째 산문집 <미안한 마음>을 썼다.
산문집 제목이 <미안한 마음>이다. 뭐가 그렇게 미안한가? 혹 시를 못 쓴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아닌가?그것도 그렇고. 책 구절 중에 ‘사람이어서 미안한 마음’이라는 게 있다.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들. 자연을 아무렇게 생각하고 그런 것. 내 감각에 대한 반성도 있다. 내가 못 먹는 것, 내가 취할 수 없는 것, 내가 상했다고 냄새를 맡는 감각들이라는 것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자세로 삶을 살아온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집안에 별 도움이 못되는 것도 미안하다. 사실 <미안한 마음>은 마음에 드는 책 제목은 아니다.
왜 마음에 안 드나?
시‘흔들린다’에 쓴 것처럼, 제목을 ‘흔들리지 않으려고 흔들리는 나무처럼’이라고 짓고 싶었다. 출판사에서 너무 길다고 하더라. 내 보기엔 흔들림이 건강한 것 같다. 부족하더라도. 결국 이 산문집의 내용이 흔들렸을 때의 기록들이니까.
<말랑말랑한 힘>으로 김수영 문학상 받았을 때도 수상 소감에 ‘앞으로 흔들리지 않기 위해 흔들릴 거다’ 라고 썼다. 누구보다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
아니, 갈등이 많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굉장히 이기적인 삶이다. 올해 늦가을쯤 시집을 하나 낼 생각인데, 거기에도 그런 얘기를 쓸 생각이다.
시를 쓴다는 게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다른 것 할 수도 없고. 세월이 흘러 흘러 이렇게 살아온걸.
우리에겐 시인이 시를 쓰지 않는 게 더 이기적으로 보인다.
내가 낸 시집들이 마음에 들진 않는다. 너무 어려서 막 낸 것도 있고. 오늘 인터넷을 열어놓고 보니까 내가 12월이나 1월, 겨울에 시집을 주로 냈더라. 미루고 미루다가 겨울엔 바다도 안 나가니까 그때 책을 낸 거다. 최선을 다해서 써야 하는데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마감 때문에 어거지로 책을 낸 것 같나?
그렇다. 출판사에서 강요하지 않았으면 책을 못 냈을 거다. 미루고 미루다가 냈다. 이번 산문집도 원고량도 너무 작고 부족한 책이다. 왜 이렇게 끈기가 없는지. 누가 놀자 그러면 그 핑계로 안 쓰는 거다. “바빠?”그러면 “뭐 나중에 해도 돼요”그런다. 얼씨구나 하고 나가는 거다. 만날 고기나 잡으러 다니고.
‘어민 후계자 함현수’란 시를 쓰더니 어민 후계자 ‘함민복’이 됐다.
그렇다. 요즘엔 물고기에 관한 글을 좀 써보려고 한다. 물고기 찍으려고 디지털 카메라도 하나 샀다. 그 사람들이랑 고기 잡으러 놀러 다니는 게 제일 재밌다. 낙지 잡고 숭어 잡고. 고기 잡는 방법 같은 것도 보고 있으면 참 재밌다. 술도 걸치고. 고기 잡으면 기분 좋으니까 그분들이 술 한 잔 걸치자고 하고, 또 안 잡히면 안 잡혔다고 마시잔다.
글 쓰는 사람들은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내가 쓰는 언어로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내가 쓰는 게 가짜는 아닐까 그런 의심과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다. 어부들을 보면 오히려 시가 안 써질 것 같은데, 어떤가?
그들하고 있으면 내가 들은 말들을 그대로 옮기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다. 내가 시라는 형식을 빌려서 쓰면 그런 말들이 죽지 않는가, 그런 생각 든다. 이야기체 형식의 시를 써야 하는 건 아닐까 싶고. 세계 예술대학은 다 도심 한복판에 있다고 들었다. 사람들과 가장 많이 부대끼는 게 예술일지도 모르겠다. 강화도에 일부러 내려간 건 아니니까.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지만 거기에서 느끼는 삶의 문제라고 도심의 삶과 크게 다른 건 아닌 것 같다.
시를 못 쓰면 소설을 쓰고 소설을 못 쓰면 평론을 쓴다는 말도 있는데, 혹시 시 쓰기 힘들어서 산문을 쓴 건가? 당신의 유명한 첫 번째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에도 불구하고 사실 독자가 시인들에게 기대하는 건 산문집이 아니다. 왜 시인들이 자꾸 산문집을 내는 걸까?
산문을 쓰는 건 돈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시는 안 봐도 산문은 본다. 산문 원고료도 괜찮은 편이다. 몇 개만 써도 한 달 살 수 있으니까. 잡지에서 원고료 받고 거기에서 원하는 글을 써주다 보니까 산문집이 어수선하다. 나는 산문 쓰기가 더 어렵다. 시 쓰는 사람은 시 쓰는 게 제일 쉽다. 시를 쓰고 싶은데 살아가야 하니까 산문을 쓰는 거다. 시 쓰는 사람은 가급적 산문은 안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짧은 산문 하나 쓰면 시를 쓰려고 생각했던 것들, 즉 시 2-3편이 모두 산문 한 구절에 다 들어가버린다. 최승호 시인의<반딧불 보호구역>도 산문 썼던 걸 시집으로 바꿔 버린 거다. 그러니까 난 산문 청탁이 오면 후배 이정록 시인에게 넘겨버린다. 그가 더 잘 쓴다고 추천하는 거다. 그러면 이정록 시인에게서 전화가 온다.“형, 왜 자꾸 나에게 맡겨요? 내가 라이벌이니까 내가 시 더 잘 쓰니까 못쓰게 하려고 산문 떠넘기는 거죠?”
그럼 뭐라고 대답하나? “어떻게 알았어?”라고 말하나?
“그렇게 산문 쓰고 시 써도 내가 못 따라가.”최승호 시인이 언젠가 만났을 때 나에게 경제적으로 정 힘들면 마음을 안 다치게 동시를 쓰라고 하셨다. 동시를 쓰면 시 쓰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고.
시인을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2006 젊은 시’라는 책을 가끔 보면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가 다 비슷한 것 같다. 심지어 문장이나 어휘도 비슷하다. 그 시들을 읽고 있으면 과연 우리가 좋은 시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대학교 때 이근배 선생님께 한 학기 수업 들은 적 있었는데 그러시더라. 시에 ‘나폴레옹하는 절망’이라고 썼는데 사람들이 ‘ 멋있다’고 난리가 났다는 거다. 그런데 그게 실은 ‘나를 포옹하는 절망’의 오타였다고 하더라(웃음). 젊은 사람들의 시가 너무 새로워서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 너무 어렵다. 다 새로워서 하나도 안 새롭다. 그쪽으로 너무 몰려가는 건 아닌가 싶다. 내가 이해를 못해서 그런지…(웃음). 시의 본령이 거기에 맞는가라는 생각 든다. 시라는 건 사람의 마음이니까, 시를 보고‘나도 이런 생각해봤어’라는 공감을 느끼게 해주는 게 시가 아닐까. 박상순 시인의 시 같은 경우 읽기 힘들어도 그런 느낌은 분명 있었다. 우리가 시를 다 이해할 필요는 없으니까. 문학 잡지들 보면‘젊은 시인들 특집’이라는 데 다 모르겠더라. 어렵고 길다. 짧아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너무 길다.
그들의 시에 비하면 함민복의 시는 너무 착한 것 아닌가? 이번 산문집도 너무 착하다. 단순한 거지.
더 단순해졌으면 좋겠다. 새로운 표현도 중요하지만 그런 게 새로운 거라면 낡은 게 더 새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낸 산문집 소개를 보니까 너무 익숙한 것들로 포장돼 있어서 좀 그렇다. 만날 얘기 나오는, 가난하고, 뭐 그런 것들.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개인적인 얘기도 많이 뺐는데.
가난 얘기가 자꾸 나오는 게 싫은가 보다.
그렇다. 가난하지 않으니까. 잘 산다, 그냥. 뭐가 가난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밥 먹고 술 사먹고 담배 두 갑 사서 피우고, 잘 산다. 전화기도 핸드폰 있지 집 전화기 있지 두 개씩이나 가지고 있고. 인터넷도 하고.
얘기하고자 하는 정서가 ‘가난’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런 걸 거다. 그리고 사람들은 시인과 가난을 연결시키길 좋아한다.
그래서 인터뷰 하기 싫었다. 너무 그쪽으로 맞추니까. 그게 전부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글을 써도 비슷하게 봐버린다.
강화도에서 홀로 시를 쓰면 외롭다는 생각도 들텐데, 왜 나는 시를 쓸 수밖에 없었나, 그런 생각은 들지 않나? 자신이 선택한 삶인가?
(하늘이) 주신 것도 없고. 그냥 그렇게 사는 것 같다. 내가 성격이 이래서…. 요즘은 나이에 대한 두려움도 생긴다. 책 보면 저자 약력이 나오지 않나. 이 사람은 이 나이에 벌써 이런 걸 했구나, 난 그럼 뭘 했나, 싶고.
나이 사십이 넘으면 저승 갈 때 필요한 보따리를 챙겨야 한다는데.
대책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다시 살라고 하면 또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
운동 선수 했을 것 같다. 축구 선수.
예전에 쌍절곤도 잘 돌렸다고 들었다. 유하 감독이 <말죽거리 잔혹사>에 출연시키려고도 했다던데.
유하 감독이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 출판기념회 때 나보고 쌍절곤 돌리라고 했었다. 우리 세대가 바로 이렇게 쌍절곤 잘 돌리는 이소룡 세대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거라고. 못한다고, 쌍절곤 없다고 했더니 자기가 사오겠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시범 보였다. 그때 사람들이“와, 너무 잘한다”고 그랬다. 잘하긴 잘했다(웃음).
잘하긴 잘했다고?
그럼. 쇠사슬 몇 개를 끊어먹었는데. 학교 다닐 때 태권도부 했다. 문예부 안 하고. 고등학교(수도전기공고)에 들어가서는 아무것도 안 했으니까. 심심하고 할 일 없으면 옥상 가서 쌍절곤 돌렸다. 하기 싫은 과목들투성이었는데다가 공부해도 다 거기서 거기다. 그리고 공부 잘하면 대학교 보내주는데 대학교 가면 9년 동안 원자력 발전소에서 근무해야 했다. 대학교 안 가면 5년만 근무해도 되고. 그래서 더 공부 안 했다.
문학보다 무술을 더 좋아한 건가?
문무를 겸비한 거라고 해두자(웃음). 축구 선수 안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 뒤표지에 소설가 박민규가 지구에서 할 수 있는 근사한 일 중 하나가 함민복의 시를 읽는 것이라고 썼듯이. 그렇지 않아도 조금 있다가 박민규에게 물어보려고 한다. 오늘 문인들과 술자리가 있는데, 거기 박민규도 온다고 하더라. 분명 지구에서 할 수 있는 근사한 일 중 하나가 함민복의‘시’를 읽는 일이라고 했다. 산문집 뒤표지에 그렇게 쓴 건 나보고 산문을 쓰지 말라는 얘긴가, 물어볼 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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