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김국진, 웃는 얼굴로 돌아보라

2008.07.30GQ

도저히 평안했을 리 없는 5년을 뒤로 하고 돌아온 김국진은 지금, 더 없이 평안해 보인다.

검은색 수트와 셔츠 모두  ZIO SONG ZIO, 시계는 구찌, 검은 구두는 보스

검은색 수트와 셔츠 모두  ZIO SONG ZIO, 시계는 구찌, 검은 구두는 보스

방송 복귀 후 벌써 반 년이 흘렀다. 마냥 만족스럽지는 않을 텐데, 어떻게 자평하겠나.
작년 10월에 재개해서 처음 3개월 동안은 꽤나 혼란스러웠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안 하고 지켜봤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다음 3개월 동안은 이런 건 이쪽으로, 저런 건 저쪽으로 가야겠다는 방향감각을 키우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평안하다. 인터뷰도 이게 처음이다.

무려 5년을 쉬었다.
연예계에선 50년과 같은 시간이다. 보통 방송하는 사람치고 5년을 쉰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3개월만 쉬고 있어도 인기가 다 떨어졌나 보다, 생각하고 수군거린다. 6개월 동안 안 보이면 끝났다고 이야기한다. 하물며 5년이면(웃음).

어떤 특별한 계기가 생겨서 돌아온 건가?
그렇지 않다. 매니저에게는 “내가 방송을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 얘기해줄 테니 보채지말라”고 말했다. 방송을 위한 방송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내가 좋고 하고 싶을 때 시작하고싶었다. 마음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렸다고나 할까. 이제 서서히 시작해볼까 싶어서 자연스레 돌아온 것이다. 지금 참 기분이 좋은 상태다. 평화롭고, 기쁘다.

매니저가 무슨 죄인가. 영화 <라디오 스타>가 따로 없다.
14년째 같이 하고 있다. 내가 최고일 때도, 최악일 때도, 밋밋할 때도 늘 함께한 친구다. 연예인과 매니저란 일종의 공동운명체다. 전에 한창 활동하던 5년 동안은 하루 2시간씩만 자고 매일 일했다. 밤새 촬영한 뒤 샤워하고 나면 바로 다음 촬영이었다. 그때는 매니저 두명이 돌아가면서 날 관리했다. 그렇게 5년 고생했으니 매니저도 나도 5년 쉴 수 있는 것아닌가. 그냥 느긋하게 기다리자고 했다. 때가 아닌데 부러 나섰다간 나뿐만 아니라 매니저도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다. 모든 데 때가 있다고 본다. 타이밍이 있다.

‘국진이빵’은 베스트셀러였다. 식품에 이름이 쓰일 정도면 안티가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다. 비하하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최민수빵’을 일부러 먹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고마운 일이다.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게 어렴풋한 꿈 같기도 하고, 아련하다. 워낙에내가 자연스러운 유머를 하는 게 컨셉트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사랑해요, 밤새지 마란 말야, 같은 당신의 유행어들 또한 생각해보면 그냥 일상어였다.코미디언 김국진에게는 일종의 ‘온기가 있는 희극성’이 존재했다. 문제는 지금 연예계에서그게 통하느냐 하는 것이다.
내가 했던 코미디를 분석해보면, 이른바 ‘니쥬’와 ‘오도시’의 적절한 사용이었다고 할 수있다. 일본말이라 미안한데 니쥬는 웃기는 말을 하기 전에 분위기를 깔아주는 걸 의미하고 오도시는 니쥬 뒤에 팡, 터뜨리며 웃겨주는 걸 말한다. 이를테면 내가 ‘사랑해요’라고 말하기전에는 적절한 니쥬가 앞에 와줘야 한다. 그래야 그 말이 웃기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쉬고있는 5년 동안 많은 게 달라졌다. 이제는 니쥬가 없다. 니쥬-오도시, 니쥬-오도시 이렇게 가던게 오도시로만 꽉 차 있다. 덕분에 템포가 아주 빨라졌다. “철수와 영이가 어딜 가고있는데”라고 말을 꺼내면 저쪽에서 “아니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라고 윽박 지른다. 아주 재미있는 말들만 순식간에 뽑아 뱉어내야 통하는 판이다. 그러다보니 볼 때는 정신없이 웃긴데 나중에 마음에 남아 오래가는 웃음은 없는 것 같다.

다소나마 반감이 느껴진다. 뭐가 더 좋은 코미디라고 생각하나?
웃음의 포인트를 잔웃음으로 가느냐 굵은 웃음으로 가느냐의 문제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아닌 것 같다. 어떤 게 더 좋은 코미디인지도 애매하다. 예를 들면 중거리에서 날리는 슛과단거리에서 날리는 슛의 차이인 것이다. 웃기는 게 공통된 목적이다. 다만 너무 단거리 슛위주라서 남는 아쉬움 정도는 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웃음을 보여주기 힘들어진 거니까.

그래도 <라디오 스타> 안에서 꽤 자리를 잡아가는 표정이다. 처음에는 속수무책으로 묻히고 무안당하는 걸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지금은 중재자 이미지로 어느 정도 안정화되는 분위기다. 처음에는 힘들었다. 사람들이모여서 하는 오락 프로그램에선 흐름이라는 게 있다. 현장에 있으면 그게 보인다. 난 그흐름을 깨고 싶지 않았다. 천성적으로도 그렇고, 또 예전의 경험에 비추어보아 도저히 끼어들기 미안한 경우들이 있는 것이다. 남이 잘하고 있는 흐름이 있는데 내가 뭐라고 끼어들어가서 그걸 깨버리나. 그래서 처음에는 아무래도 상황 파악을 못하고 가만히 있는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사실 실제로도 적응하기 힘들었고 말이다.

신변잡기와 인신공격을 동원해 상대를 공격하기에, 당신은 너무 소심해 보인다.
기본적으로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다. 내 사생활에도 사람들이 관심 없었으면 좋겠다.사람들과 잘 어울려 다니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런데 요즘은 방송에서 사생활이 자연스레 녹아들어가고 심지어 주요 화젯거리가 되지 않나. 상대 사생활을 모르면 웃길 수가 없는판이다. 그래서 더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전에는 개그만 생각하고 개그를 잘할 수 있는방법에 대해서만 고민했다. 이제는 나도 사람들과 좀 어울려 대화도 하고 술도 마시고,그러면서 성향도 파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뭔가 굉장히 타락하는것처럼 보이는데, 그게 정상적인 삶이다. 내가 여태 정상적으로 못 살았던 것이다.

더 쉬운 방법으로 방송 복귀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라디오 스타>였나? <라디오 스타>는요즘 방식 중에서도 가장 멀리 앞서가 있다고 봐도 무방한 프로다.
<라디오 스타>의 컨셉트가 요즘 방송 중에서도 가장 튀는 컨셉트인 건 분명한 사실이다.기존에 하던 걸 그대로 하면서 복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과연 통했을까? 이왕 깨지고틀리고 패배하고 헤맬 거면 가장 앞서나가는 곳에서 고생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깨질 때확실하게 깨져야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골프하면서 많이 배웠다.

골프 이야기는 떠올리기 싫지 않나?
그게(웃음). 그런데 내가 원래 한 번 시작하면 꼭 끝까지 가보는 스타일이다. 도중에 물러서고 그러는 스타일이 아니다. 앞에 산이 있다? 그럼 산 깍아! 하는 식이다. 여섯 번째 프로 테스트때까지가 딱 좋았다. 그 때 선수 400명 가운데 2등 했었다. 그 이후에 도전한 테스트는 대부분시간이 남아서, 혹은 관성으로 참여했던 것 같다.

프로 골퍼가 정말 되고 싶었던 건가?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훈련해온 선수들과 겨뤄 내가 어떻게 프로가 될 수 있겠나. 내가 아무리 어리석다고 해도 그 정도 판단은 할 수 있다. 내가 하는 골프라는 건 자치기 수준이다. 다만 내가 프로테스트에서 어느 정도까지 갈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물론 그과정에서 수없이 깨질 거라고 예상했다. 실은, 내가 골프를 통해서 정말 얻고 싶었던 게, 바로 그 패배감이다.

패배를 유독 강조하는데, 특별한 경험이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에 <한바탕 웃음으로>라는 프로가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개그콘서트> 같은 성격이었다. 거기서 김용만과 짧으면 5분, 길면 10분짜리 단막 코미디를 했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미국 유학을 떠났고, 2년 후에야 한국에 돌아왔다. 당시 방송에 복귀해 처음 맡은프로가 1시간짜리 버라이어티 쇼였는데, 그때 정말 아주 처참하게 깨졌다. 쑥대밭이 됐다.5분, 10분짜리에 익숙하던 내가 1시간짜리를 진행하려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거다. 전력을 다해서 다 쏟아냈는데, 시계를 보니 겨우 15분 지나 있는 식이었다. 앞으로 45분동안 뭘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그런데, 인생을 통틀어서 그때 제일 많이 배운 것 같다.내가 뭘 할 수 없는지 체득하고 나서야, 뭘 해야 할지 보였다. 요즘은 세상이 바뀌어 성공이 성공을 낳는다고 하던데,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내게는 더 가깝다.

옆에서 보기에 정말 순탄치 않은 인생이다. 프로 골퍼, 사업 실패, 이혼.
그게 좀 억울하다. 사실 난 누구에게 해를 입혀본 적이 없다. 내게 당장 천 원이 이익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이천원 손해인 문제라면 덤벼들지를 않았던 사람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수줍음도 많이 타서 말도 없고 남의 일에 관심 없다. 이경규 선배랑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7년 같이 했는데, 어느 날 우리 매니저에게 “쟤 요즘 뭐하고 지내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냥 방송 끝나면 슬그머니 갈 길 가는 스타일이다. 한마디로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조용히 살았다.그렇게 정말 조용히 살았는데! 내가 내 인생사를 글로 정리해두고 읽어봐도 아마 기가 찰거다. 왜 이렇게 시끄럽게 살게 된 거지? 싶다. 그렇게 다시 살라고 하면 못 한다.

<라디오 스타>에서 김구라가 자주 이혼 문제를 소재삼아 공격하던데. 이제는 덤덤한 건가?
이혼 직후에는 대인 기피증까지 생겼었다. 이제는 많이 편해진 것 같다. 화도 안 나고, 그냥그런 말을 들으면 재밌다. 그래서 웃는다. 그냥 막 웃음이 나와서 “아니 이 사람이 지금말이야”라고 해놓고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서 웃는다. 삶이란 게 참 그렇다. 별 것 아닌 건데.

얼마 전 시트콤 <코끼리> 제작발표회가 있자마자 전 부인인 이윤성 씨 관련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왔다. 언론의 속성이란 그렇다. 계속 그럴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나라면 그런 기사 안 쓰겠지. 하지만 그들은 내가 아니지 않나. 이혼한 게 칭송받을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아마도, 연예인에 대한 관심과 소음이야 어쩔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말’들에는 일일이 대응하지 않아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몽테뉴가그랬다고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일보다도 그에 대한 여러 가지 당사자의 말들 때문에더 큰 일을 당하게 된다고 말이다. 늘 명심하고 있다.

6개월이 지났다. 다음 6개월이 흘렀을 때는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
사실 지금 목표가 없다. 그냥 빨리 적응하고, 즐기는 걸 우선으로 하자는 주의다. 그렇게 큰부담 없이 괴로움 없이, 편안하고 싶다. 큰 목표는 최소한 올해를 넘긴 후에 새로 그려볼생각이다. 이제와서 새삼 급할 것도 없다.

    에디터
    허지웅
    포토그래퍼
    cheho
    스타일리스트
    유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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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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