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마포의 리노

2011.10.24GQ

밀라노 최고의 클래식 옷가게 ‘알 바자’의 오너, 리노 레루치를 만났다. 마포구 뒷골목에서, 젤라토 대신 부라보콘을 먹었다.

이 동네에서 당신을 만나다니.
여행이면 더 좋았겠지만, 일을 하려고 한국에 왔다. 이번에 반하트 옴므와 함께 재미있는 작업을 하게 됐다.

어떤 일인가?
반하트 옴므가 그림이라면, 그림을 넣을 액자, 걸어둘 벽, 비춰줄 조명을 만든다. 이를테면 스타일 디렉터다. 반하트 옴므는 유행보단 스타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게 마음에 들었다. 분명히 뭘 한다기보단, 전반적으로 함께 컬렉션을 만들 것이다.

오늘 입은 수트, 멋지다.
아침에 일어나서 날씨를 보고, 뭘 입으면 기분이 좋을까 생각한다. 곧장 옷장을 열고 하나를 고른다. 재킷이든 바지든. 그러면 나머지는자연스럽게 고르게 된다. 거울 앞에 섰을 때, 아, 멋지군, 감탄이 나오면 끝이다. 나만 만족하면 그만이다. 그럼 하루 내내 유쾌하다. 가장 먼저 고르는 건 뭔가? 당연히 속옷이지. 그 다음은 정해진 건 없다. 뭘 먹고 싶을 때 무심코 냉장고를 열지 않나? 그때 눈에 보이는것 중 당기는 걸 먹게 된다. 옷도 마찬가지다. 그때그때 끌리는 게 다르니까, 정해진 건 없다.

고르고 고민하다가 약속에 늦은 적은 없나?
한 번도 없다. 수트라는 틀을 벗어나진 않으니까, 온갖 시도나 모험을 해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입어보고 싶었지만, 주저하느라 아직 입지 못한 옷은 없나?
그게 무슨 소리지? 입어보고 싶은데, 왜 안 입나? 하고 싶은 건 다 한다. 보통 재킷과 팬츠 색깔을 다르게 입는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라서 정확히 맞춰 입었다. 누가 시켜서 그랬겠나? 옷은 날 위해서 입는 거다. 누가 보라고 입는 게 아니라.

한국엔 주저하는 남자가 많다.
한국이라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어느 도시든 자신감이 없는 남자는 다 있다.

거리에서 찍힌 당신 사진이 그들에게 많은 용기를 준다면, 믿겠나?
기쁜 얘기다. 예전에 일본 오사카에 사는 어떤 회장님 옷차림을 제안한 적이 있다. 처음엔 문제가 많았다. 자신감도 없는데다, 회장이 이렇게 입어도 될까 걱정까지 했다. 만나서 많은 얘기를 했다. 지금은 오사카에서 가장 끝내주는 멋쟁이가 됐다.

‘알 바자’에 온 사람 중 특별히 기억나는 고객이 있나?
배우부터 정치인까지, 많이들 온다. 하지만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내 가게에 오면 누구나 스타일에 대해 열중하고 토론한다. 단지 옷에 빠진 남자들이 어울리는 교제의 장인 셈이다.

스콧 슈먼의 사진이 당신을 세계적 스타로 만들었는데, 그 후에 달라진 건 없나?
글쎄, 잘 모르겠다. 난 원래 유명했다. 스콧 슈먼 말고도 내 사진을 찍어간 사람이 수천 명은 넘을 테니까. 그렇게들 찾아와서 사진 좀 찍자고 하더라고.

지금, 클래식 수트는 마치 트렌드인 것 같다.
어림없는 소리. 클래식 수트는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다. 30년 동안 마르고 닳도록 입은 옷을 어떻게 트렌드라고 부를 수 있나?

당신 말고,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남자 두 명을 꼽는다면?
지아니 아니엘리와 스티브 맥퀸. 피아트 창립자인 지아니 아니엘리는 클래식의 교과서 같은 사람이다. 클래식을 사랑하는 이탈리아 남자라면 모두 그를 숭배할 것이다. 스티브 맥퀸의 사진집은 거의 다 갖고 있다. 아주 가끔 그의 스타일을 따라 입기도 해본다.

어떻게 하면‘ 리노 스타일’로 입을 수 있나?
첫째는 자신감. 그리고 옷에 몸을 맞추는 게 아니라, 몸에 옷을 맞춰야 한다. 단단한 어깨 선이라든지, 잘록한 허리라든지, 유행이라고 그걸 따라 입는 건 그냥 ‘패션’이고, 자기 몸에 딱 맞는 옷을 입는 건 ‘스타일’이다.

언젠가 밀라노에 간다면 알 바자에 꼭 갈 거다. 거기 말고도, 추천하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여행 책에 나오는 식당은 근처도 가지 마라. 생선 요리든 고기 요리든 뭐든 다 맛있는 아쿠아리우스, 로마식 식당 카치오 페페, 시칠리아식 생선 요리가 끝내주는 피란델로를 추천한다. 가면 꼭 리노의 친구라고 해라. 대우가 다를걸?

    에디터
    박태일
    포토그래퍼
    남현범

    SNS 공유하기